밸런타인데이… '애정의 진도'에 맞춘 초콜릿 6가지에 음악·영화도 곁들이기

1956년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 아내는 애정이 식은 남편 때문에 고민이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봉지에 든 코코넛 초콜릿을 발견하고 다 먹어치운다. 잠시 후 얼굴이 발그레해진 남편은 아내에게 다가간다. 다음날 아내는 초콜릿 가게에 나타나 "코코넛 초콜릿 다 주세요"라고 외친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 '초콜릿'(2000)의 한 장면이다. 절제와 엄숙에 짓눌린 한 마을에 비앙(줄리엣 비노쉬)이 나타나 초콜릿 가게를 차리고, 초콜릿을 먹은 마을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이 사랑을 되찾는다는 줄거리다. '초콜릿이 무슨 치료제나 마약이라도 되느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일어날 법한 얘기다. 초콜릿에는 사람이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을 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라고 알려진 페닐에틸아민이 풍부하다. 이 물질은 중추신경을 흥분시키고 각성제 역할을 해 정신을 안정시키고, 우울함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주고받는 관습도 괜히 생긴게 아니다.

초콜릿은 좋은데, 2월 14일만 되면 가게에서 판매하는 초콜릿을 사는 게 '상술(商術)'에 넘어가는 것 같아 찜찜하다면 그냥 만들어버리면 된다. 홈베이킹 매장과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브레드 가든' 연구개발실의 송재연 수석연구원에게 초콜릿 만드는 법을 알아봤다. 송 연구원은 "사는 것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종류도 다양하고 더 맛있다. 요즘 시중에서 판매하는 초콜릿 재료들은 대부분 고급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양이 안 예쁠 수는 있어도 맛은 확실히 있다"고 했다.

일단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선 커버처 초콜릿과 코팅용 초콜릿을 구분해야 한다. 커버처 초콜릿은 가나슈(초콜릿에 휘핑 크림을 섞어 초콜릿이 녹을 때까지 가열해 만든 초콜릿 아이싱)나 필링(속을 채우는 재료)으로 쓰이고, 녹여서 반죽에 넣기도 한다. 코팅용 초콜릿은 초콜릿이나 케이크 윗면을 코팅할 때 사용한다.

어렵거나 번거로울 거란 걱정은 접자. 정 자신이 없다면 튜브형 초콜릿크림과 초코펜, 몰드(틀)가 한 상자에 담긴 초콜릿 만들기 세트(1만원대)를 이용해도 좋다. 몰드에 초콜릿크림을 짜넣고 초코펜으로 장식만 해서 굳히면 끝인데도 시중에 나온 초콜릿보다 예쁘다.

초콜릿 재료와 몰드 등은 브레드 가든(www.breadgarden.co.kr)과 베이킹수(www.bakingsu.com) 등 홈베이킹 전문 오프라인 매장과 대형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초콜릿 만들기'만 쳐도 한 페이지 가득 온라인 매장들이 뜬다. '애정의 진도'에 맞춰 6가지 초콜릿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초콜릿만 주기엔 쑥스럽거나 허전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속삭일 때 좋은 배경음악과 초콜릿을 먹으면서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도 추천한다.

'애정의 진도'에 맞춘 초콜릿 6가지

>>짝사랑 중이거나 친구에서 연인관계가 되고 싶을 때

- 리얼 핫초코 스푼(14~15개 기준)
- 다프트펑크 ‘섬싱 어바웃 어스’, 더스미스‘플리즈 플리즈 렛 미 겟 왓 아이 원트’
- 롭 라이너 감독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떨리고 창피하지만 안 할 수 없는 게 사랑 고백이다. 그렇다고 잔뜩 힘줘서 거창한 초콜릿을 준다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만들기도 쉽고 귀여운 리얼 핫초코 스푼이 제격이다. 손재주도 설거지도 필요없다.

나무 숟가락 끝에 달린 초콜릿을 따뜻한 우유에 넣어 휘휘 저으면 초콜릿 음료가 된다. 합성첨가물이 없는 순수한 초콜릿을 녹여 만들었다. 은근하게 고백하려면 ‘우리 사이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노래하는 ‘섬싱 어바웃 어스’를, 애가 많이 타는 상황이라면 ‘제발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오’라고 애걸하는 ‘플리즈 플리즈 렛 미 겟 왓 아이 원트’를 들려주며 핫초코를 함께 마시는 게 좋겠다. ‘친구에서 연인으로’의 교과서라고 해도 손색없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까지 보고 나면 고백을 거절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재료 다크커버처초콜릿 200g, 원형몰드, 나무스푼 14~15개, 초코펜 다크 1개
1. 커버처초콜릿은 잘게 부숴 볼에 넣고 따뜻한 물에 중탕해 녹인다.
2. 매끄럽게 녹은 초콜릿은 몰드에 95％ 채워준다.
3. 몰드에 넣은 초콜릿이 살짝 굳으면 스푼을 쓰러지지 않게 꽂고 서늘한 곳에서 30분 이상 굳힌다.
4. 몰드에서 초콜릿을 빼낸 뒤 초코펜을 이용해 스푼에 얼굴 표정을 그린다.

>> 사랑을 막 시작한 연인

- 파스텔 트러플 초콜릿(14개)
- 빌 위더스 ‘러블리 데이’, 키스 자렛 ‘올 더 싱즈 유 아’
- 도날드 페트리 감독 ‘10일 만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갓 사랑을 시작한 ‘달달한’ 연인들에겐 초콜릿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이들에겐 보기만 해도 달콤한 파스텔 트러플 초콜릿이 제격이다. 이 초콜릿을 먹으며 ‘10일 만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보면 사랑을 오래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방법이 떠오를 것이다. 사랑 노래야 많지만 ‘러블리 데이’ ‘올 더 싱즈 유 아’만한 것도 드물다. ‘네가 있어 사는 게 행복하다’와 같은 낯간지런 얘기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갓 시작된 사랑도, 초콜릿도 달달한데 노래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재료 화이트트러플쉘, 화이트 커버처 초콜릿 150g, 화이트아몬드크림 150g, 코팅용 파스텔(바이올렛·옐로·그린·핑크 등) 각 50g

1. 중탕으로 녹인 화이트 커버처 초콜릿과 화이트아몬드크림을 섞은 후, 짤 수 있을 정도의 농도가 될 때까지 차가운 물에 중탕해 실리콘 주걱으로 골고루 섞어가며 식힌다.
2. 일회용 짤주머니에 넣고 화이트트러플쉘에 가득 짠 뒤 실온에서 굳힌다.
3. 중탕으로 녹인 각각의 코팅용 파스텔에 만들어놓은 화이트트러플쉘을 담가 전체적으로 코팅한 뒤, 실온에서 굳힌다. 이 작업을 두번 반복한다.
4. 삼각유산지에 중탕으로 녹인 코팅용 파스텔을 넣고 만들어놓은 초콜릿을 장식한다.

>> 한창 사랑에 불타는 연인

- 피넛 생초콜릿
- 마빈 게이 ‘렛츠 겟 잇 온’
- 에드리언 라인 감독 ‘나인 앤 하프 위크’

한창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겐 피넛 생초콜릿이 좋다. 생초콜릿은 귀엽지 않고 무뚝뚝하게 생겼다. 대신 말랑말랑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있어 오히려 관능적이다. 관능의 영화라면 역시 ‘나인 앤 하프 위크’다. 영화를 본 뒤 초콜릿을 갖고 ‘위험한 장난’을 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렛츠 겟 잇 온’은 요란한 효과음이 없는데도 사람을 달뜨게 만드는 노래다. 티 안 나게 유혹할 수 있다.

●재료 생크림 140g, 다크커버처 초콜릿 280g, 피넛 40g, 초코쿠키크런치 30g, 밀크쿠키크런치 30, 코코아가루 30g, 녹차가루 30g, 딸기가루 30g, 슈가파우더 30g, 길이 15㎝의 가나슈틀 혹은 네모난 모양의 그릇
1. 냄비에 생크림을 넣고, 가장자리가 끓을 때까지 중불에 올린다.
2. 냄비를 불에서 내린 뒤 잘게 다진 다크커버처 초콜릿을 넣는다.
3. 실리콘 주걱으로 초콜릿이 녹을 때까지 골고루 섞은 다음 피넛버터를 넣는다.
4. 초코쿠키크런치와 밀크쿠키크런치를 넣고 실리콘 주걱으로 골고루 넣는다.
5. 15㎝ 가나슈틀에 담은 후 냉장고에 차갑게 굳힌다.
6. 차갑게 굳은 뒤에는 틀에서 분리, 가로 2㎝·세로 2㎝ 정사각형으로 자른 다음 코코아가루·녹차가루·딸기가루·슈가파우더를 묻혀 장식한다.

>> 오래 만나 친구처럼 편안한 연인

- 쁘티초코 타르트(10개)
- 코모도스 ‘이지’, 샤데이 ‘러버스 락’
- 우디 앨런 감독 ‘애니 홀’

오래 만난 편안한 연인에게 자극이 강한 초콜릿은 어울리지 않는다. 과자에 초콜릿을 담은 쁘띠초코 타르트는 맛이 부드러워 여러 개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이지’나 ‘러버스 락’까지 함께 들려준다면 ‘내 곁을 지켜준 당신이 고맙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애니 홀’은 오래 만난 연인들이 보면 더 공감할 만한 영화다. 때론 힘들고 지겨워도, 결국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료 타르틀렛 10개, 이로코초코크림 100g, 다크커버처 초콜릿 50g, 다크코팅용 초콜릿 100g. 밀크코팅용 초콜릿 30g
1. 이로코초코크림과 녹인 다크커버처 초콜릿을 섞는다. 별모양 깍지를 끼운 짤주머니에 담아 타르틀렛에 짠다.
2. 녹인 다크코팅용 초콜릿을 유산지 위에 스패츄러로 펴 바른 후 원형커터로 찍어 모양을 만든다.
3. 밀크코팅용 초콜릿을 녹여 글씨쓰기용 삼각형 유산지에 넣어 만들어놓은 원형 초콜릿 위에 지그재그로 장식한다.
4. 장식용 초콜릿을 타르틀렛에 올린다.

>> 멀리 떨어져 있거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

- 보석함 초콜릿(18~20개)
- 밥 딜런 ‘걸 프롬 더 노스 컨트리’, 타미아 ‘오피셜리 미싱 유’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그녀에게’, 왕자웨이 감독 ‘화양연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상대가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든, 사랑의 장애물 때문이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아프다. 이런 연인일수록 더 소중한 것을 줘야 한다. 보석처럼 값나가는 것을 줄 수 없다면 보석함 초콜릿이라도 좋다. 맛이 깊고 진해 상대방도 마음을 알아줄 거다. 이럴 땐 차라리 ‘그녀에게’나 ‘화양연화’와 같은 애틋한 영화를 보며 하루종일 사랑하는 이만 그리워하자.

●재료 다크코팅용 초콜릿 100g, 이로코초코크림 200g, 밀크커버처초콜릿 100g
1. 초콜릿컵 몰드에 중탕으로 녹인 다크코팅용 초콜릿을 빵솔로 밑면과 옆면에 얇게 발라준 뒤 실온에서 굳힌다.
2. 이 과정을 2~3번 반복해 다 굳으면 초콜릿을 몰드에서 분리한다.
3. 중탕으로 녹인 밀크커버처 초콜릿과 이로코초코크림을 섞은 후 짤 수 있을 정도의 농도가 될 때까지 차가운 물에 중탕해 실리콘 주걱으로 골고루 섞어가며 식힌다.
4. 별모양 깍지를 끼운 일회용 짤주머니에 만들어놓은 가나슈를 넣고 초콜릿 컵에 가득 짠다. 빙빙 돌리다 끝에 살짝 힘을 빼며 뗀다.

>> 초콜릿 줄 사람이 없다면…

- 캐러멜 퐁당초코(18개)
- 글로리아 게이너 ‘아이 윌 서바이브’, 파이스트 ‘론리 론리’
- 도리스 되리 감독 ‘파니 핑크’, 주성치 감독 ‘도학위룡’ 시리즈

초콜릿은 빵이나 다른 음식보다 크기가 작고 모양도 내야 하기 때문에 만들 때 손을 세심하게 움직여야 한다. 달달한 냄새를 맡으며 정신을 집중하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가 없더라도 혼자 캐러멜 퐁당초코를 만들어 한 입 베어 물자. 달달하고 끈적한 캐러멜이 혀를 감싸며 위로하는 것 같다. 초콜릿 만들 때 ‘아이 윌 서바이브’를 틀어놓으면 마음 약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날은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보단 ‘도학위룡’시리즈처럼 사랑과 상관없는 영화를 보자. ‘내년에는 나만의 멋진 남자(혹은 여자)에게 초콜릿을 주자’는 다짐도 하면서.

●재료 화이트코팅용 초콜릿 100g, 설탕 80g, 물엿 25g, 물 1큰술, 생크림 80mL
1. 냄비에 설탕과 물엿, 물을 넣고 중불에 올린 후 캐러멜색이 날 때까지 그대로 둔다.
2. 불을 끄고 따뜻하게 데운 생크림을 넣어 실리콘 주걱으로 골고루 섞는다.
3. 캐러멜을 체에 내려 볼에 옮기고, 실온에서 차갑게 식힌 뒤 일회용 짤주머니에 담는다.
4. 몰드에 중탕으로 녹인 화이트코팅용 초콜릿을 가득 담고, 5~10분 정도 실온에서 굳힌 다음 몰드를 뒤집어 초콜릿을 쏟아낸다. 이렇게 하면 몰드 가장자리에만 초콜릿이 묻게 된다.
5. 캐러멜을 초콜릿 안에 90％ 정도 채우고, 그 위에 다시 중탕으로 녹인 화이트코팅용 초콜릿을 가득 붓는다. 이때 스패츄라를 이용해 표면을 평평하게 정리한다.
6. 초콜릿이 굳으면 초콜릿을 몰드에서 분리한다.

글=변희원 기자 nastyb82@chosun.com
사진=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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